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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인제대학교 퀴어공동체 IQ 설립과정

전파 2021. 7. 13. 22:16

1. 도입부

인제대학교는 2019년도 말부터 '에브리타임'(익명 대학커뮤니티)의 퀴어게시판에서 바로 입장이 가능한 퀴어 오픈채팅방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픈채팅방이 이후 모임으로 이어지지 못한 가장 큰 한계점은 아웃팅으로부터의 안전성이 담보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드러내거나 밝히길 꺼려하고 아무런 대화가 오가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오픈채팅방이 유의미한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틀과 체계가 필요했고, 따라서 모임의 초기단계로서 오픈채팅방에서 동아리 설립에 나설 주체를 발굴하는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2. 주체발굴

번개 등의 방식을 이용하여 오픈채팅방의 구성원들과 한, 두명씩 만남을 가지려 하였으나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10차례 이상 시도하여 처음 1명을 만나고, 이후에 또 다른 1명을 만나 저를 포함한 3명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습니다.

이들을 설득하여 동아리 설립과 간부 결의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모이게 된 3명(본인 포함)은 2020년 3월 말부터 취미(조깅)활동과 회의를 병행하며 주기적으로 만났습니다. 

이 만남은 회칙 초안을 작성하고 활동 방향과 형태를 고민하는 등, 동아리 설립을 위한 계획을 수립 및 집행하는 임시 집행부의 형태로 기능했습니다.

 

 

 

 

3. 첫 난관, 예상보다 저조한 호응

2020년 4월 중순에 첫 총회를 목표로 IQ 회원모집 포스터를 게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에브리타임 '퀴어게시판'과 '동아리게시판', 오픈채팅방, 페이스북 인제대학교 그룹 등 가능한 모든 곳에 게시하였지만 생각보다 그리 즉각적인 반응이 오지는 않았습니다. 동아리를 설립하려면 최소 20명(학교기준)의 인원이 필요하지만, 30명이 넘는 오픈채팅방 인원 중 IQ에 가입한 사람들은 5명 이내에 불과했습니다. 예상보다 저조한 학우들의 반응에 다들 실망하고 좌절하며 '동아리 못 만들것 같다'고 자포자기 할 뻔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홍보활동을 다시금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돌아보며 '신뢰의 부족'을 원인으로 보고 대안을 모색했습니다.


4. 적극적인 관계형성

IQ 페이스북 페이지, 카카오톡 채널을 개설하였습니다. 동영상을 통해 우리의 비전(설립배경과 방향 및 가입안내)을 생동감 있게 전달하고,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카드뉴스를 게시하여 최대한 많은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였습니다. 목소리가 들어간 안내(호소)영상은 조회수 243회를 기록할 정도로 관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5. 학우들의 신뢰얻기

아웃팅 두려움에 의해 가입을 망설이고 못하는 학우들의 연락이 많았습니다. 이들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형성하기로 했습니다.  기존에 개인정보를 기재해야 하는 구글폼 가입신청서를 수정해 온라인 상으로는 닉네임과 연락처만 기재하고 오프라인에서 어떻게든 이들을 한 명, 한 명 직접 만나면서 IQ의 설립의도를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회원을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가입희망자들에겐 1:1 면접을 보고 가입서약서에 지장날인을 통해 동아리의 안전에 대한 신뢰를 얻어내는 현재의 가입절차가 확립되었습니다.

 

6. 모두가 안전한, 구성원이 주인되는 공동체 만들기

 

일반적인 동아리라면 회칙은 복잡하고 방해만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회칙 없이(또는 사실상 사문화된) '친목'이나 '대의'만으로 묶인 집단이 쪽수나 연차에 따라 큰 권력을 행사하면서 구성원들의 신뢰를 저버리고 갈수록 내부화되는 과정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신뢰란 친목이나 개인의 희생에 기반한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구성원 각자가 동등한 주체로서 자신의 권리를 인지,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내'가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내 곁'에 설 수 있는 공동체임을 보여주는 것에서 비로소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신뢰가 생겨납니다.

 

따라서 공동체 구성원들의 민주적 권리(총회, 선출, 총투표, 의사결정구조)와 안전(가입서약서, 징계위원회, 가해자 격리 및 피해자 지원, 모임 전 공동체약속문 낭독)이 명시된 8장에 걸친 회칙설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칙을 쉽게 풀어쓴 카드뉴스를 게시하고, 누구든 원하면 회칙을 언제든 열람할 수 있도록 카카오톡 채널과 내부망에 공유하여 모두가 알 수 있도록 독려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2020년 4월 25일 IQ 첫 임시총회를 개최하여 회장과 부회장, 운영진을 선출하고 회칙을 제정할 수 있었습니다.

 

 

 

 

 

7. 두 번째 난관, 중앙동아리 인준

인제대학교는 중앙동아리 등록을 위해선 다음과 같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합니다.

 

①비공식 활동 → ②중앙동아리연합회 운영위원회 신규동아리 인준심사 과반찬성필요 → ③중앙동아리연합회 대표자회의 2/3이상 찬성필요 → ④중앙 신규동아리 1년간 활동 → ⑤중앙동아리연합회 운영위원회 신규동아리 인준심사 과반찬성필요 → ⑥중앙동아리연합회 대표자회의 2/3이상 찬성필요 → 중앙동아리 인준완료

 

IQ는 2020년 6월 8일 중앙동아리 연합회 운영위원회에서 진행하는 신규동아리 인준심사를 진행하였습니다. 20분 남짓한 발표와 쏟아지는 날 선 질문(퀴어가 동아리를 만들면 활동할 수 있겠냐?, 퀴어가 무슨 활동을 하겠다는건지 모르겠다, 퀴어치료 혐오발언 등)에도 성실히 답변하였지만, 동아리 인준, 그리고 퀴어모임에 대한 시선이 매우 까다로운 탓에 찬성 3표, 반대 6표로 부결되었습니다. IQ는 동아리연합회에 부결 이유에 대해 여쭈었지만 연합회는 익명투표라 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따라서 '인준과정에서의 혐오발언'과 '이유 묻지마 탈락'에 대해 카드뉴스를 게시하고 여론전을 하여 동아리연합회와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8. 거대한 장벽

현재 인제대학교에는 30여개 이상의 중앙동아리가 있지만, ①활동을 거의 하지 않거나 ②인원수가 미달 ③주제가 중복되는 중앙동아리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동아리가 되기 위해선 앞의 6가지 절차를 모두 거쳐야하며, 두번의 운영위원회 심사와 대표자회의에서 2/3이라는 압도적 과반투표를 2번이나 받아야 합니다. 이는 어떤 학우들이 아무리 의지와 열의가 높더라도 현실적으로 신규동아리가 중앙동아리로 진입할 수 없도록 하는 장벽이 됩니다. IQ에 앞서 문학동아리도 대표자회의 인준심사를 거쳤지만, 활동성과가 매우 많음에도 불구하고 반대표가 두 표라도 더 나왔으면 부결되는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성과나 활동이 아무리 많다 한들 중앙동아리 내의 자원(예산, 동아리방 등)의 분배에 있어 기존 중앙동아리 구성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동아리가 될 수 없는 구조입니다.

 

IQ는 중앙동아리연합회와의 간담회에서 ①신규동아리 진입장벽에 대한 문제 ②부결사유 공개 ③동아리 회원의 개인정보 보호를 요구하였으나 간담회가 끝난 뒤, 12월 신규동아리가 2차례의 재심사를 볼 수 있도록 개정한 외에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향후 IQ가 동아리 인준심사를 다시 진행할 때,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계획입니다.

 

9. 아카이빙

IQ는 가입신청, 소식지, 교육, 문서, 사업, 사진, 설문지, 징계위원회, 행사, 홍보, 회계 등 가능한 모든 자료를 IQ 구글드라이브에 아카이빙하고 간부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따라서 간부가 바뀌었으나 인수인계가 실질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의 자료공유, 혹은 간부들의 원활한 실무분담이 가능했습니다.

 

10. 공부와 토론

IQ는 간부론, 사업구상과 계획-집행까지, 정치사업, 조직론 등 5회차로 나누어 대면-비대면을 병행하여 공부와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하하호호 웃으면서 즐거운 친목을 다지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공부와 토론이 빠진 단체는 흥미가 사라지면 한 순간에 무너지기 십상입니다. 공부와 토론은 간부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고, 그러한 간부들이 주최하는 행사는 행사의 설계나 준비정도, 그리고 성과에 있어 크나큰 차이를 만듭니다. 

 

단체는 배와 같습니다. 선장과 선원들이 배를 운항하면서 어디로 갈지 각자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꺼내놓고 토론하여 합의하길 게을리한다면 배가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건 시간문제이기 때문입니다.

 

 

 

 

11. 사람에 대한 고민

끊임없이 사람에 대해 고민해야합니다. 어찌됐든 '다음에 운영진을 할 사람이 필요하니까' 누군가에게 단순히 일이나 직책을 맡기는건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에 불과합니다. 

 

정말 중요한 일은 이 사람이 맡은 일에 대해 어떠한 책임소지와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설득입니다. 예를들어 회계를 한다는건 '누군가는 해야하니까' 떠맡은게 아니라, '아무도 잘 봐주진 않지만 내가 삐끗하면 단체 전체가 한 순간에 신뢰를 잃고 무너질 수 있는 중차대한 사명'이라는 사실, 포스트잇 붙이기를 해서 의견을 나누면 귀찮을 순 있지만 이를 통해 행사 참가자들이 좀 더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행사를 통해 뭔가 남기고 갈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타인에게 일을 맡기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차피 맡겨도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두려워하고, 불평만 하는 간부가 있는 단체는 구성원들을 행사에 참가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만듭니다. 다른 이들과 일을 분담하는것이 구성원들이 단체 내에서 주체적인 존재로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행동해야합니다.

 

12. COVID-19 대응

코로나19로 인해 5인이상 집합금지가 되면서 모임이나 행사를 개최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많은 단체들이 모임을 중단하거나 쉬고 있습니다. 그러나 4인끼리 모이는 대면모임이든 비대면모임이든 꾸준히 관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계의 흐름이 끊기는 순간 되돌리는 것은 그 이전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IQ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안전수칙을 준수하면서 4인 모임 지원사업을 진행했고 비대면 모임과 같이 원거리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들을 발굴했습니다.

 

13. 마무리

IQ는 2020년 4월 25일 첫 임시총회를 시작으로 현재 30명 이상의 회원이 소속된 인제대학교 학생 주체의 모임입니다. 다양한 공식행사는 물론, 퀴어 의제에 그치지 않고 페미니즘, 인권, 다양성 이슈 등을 고민하며 책, 영화, 운동, 게임 등의 소모임을 확장해 서로간의 적극적인 친목과 활동을 촉진했습니다.

 

지금껏 자신의 정체성을 주변에 공개하기조차 두려웠던 학내 성소수자들에게 안전한 공동체가 가지는 의미는 크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생활 동안 잠시나마 머물 곳, 안전하게 터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safe zone)의 존재는 새로운 출발의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나와 우리의 인권을 공부하고, 주변부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해 알아가며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과 기대는 우리 모두를 설레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경남에, 그리고 전국에 진보적 단체들이 많이 생겨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길 바라며 기록을 마칩니다.

 

-작성자 : 전파

 


2020년 IQ 활동내역